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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기술 혁신과 합리적 규제 함께 가야 AI산업 큰다

    오피니언 김두식의 이코노믹스기술 혁신과 합리적 규제 함께 가야 AI산업 큰다중앙일보입력 2024.01.22 00:20지면보기AI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조건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챗 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새로운 차원의 AI다. 단백질 3D 구조를 정확히 예측하는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나 220만개의 신소재 구조를 탐색해냈다는 ‘구글놈’ 같은 딥러닝 AI 시스템이 테크를 위한 테크라고 한다면, 생성형 AI는 인간을 위한 테크에 가깝다.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생성형 AI는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매킨지는 생성형 AI가 전문지식을 사용하는 직역이나 관리직의 생산성을 34% 향상시킬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이미 콜센터나 마케팅·광고업체, 정보통신( IT)업체 등에서는 AI가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AI는 복잡한 대외 환경에서 기업의 준법위험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수출 통제나 경제 제재 조치에 저촉되는지를 판단하거나 공급망 규제에서 요구되는 탄소발자국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AI 개발과 활용 늘어날수록사회·안보적 위험 더 커져EU, 개인 권리 보호에 방점중국, 사회주의 보호 우선시법률 문제 이해, 대응 필수AI 위험 방지 규제도 도입IT 강국 한국, AI 경쟁력은 뒤처져AI 시장 규모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의료·헬스케어, 클라우드 등 데이터 사업, 핀테크 등 광범위한 분야에 AI 투자가 행해지고 있다. 2029년까지 AI 솔루션 시장의 규모만 최소 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업에 AI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만 2조6000억 달러에서 4조400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IT기술 전시회 ‘CES 2024’에서는 AI 전문기업이 아닌 헬스케어와 화장품, 소비재 유통기업, 전통 제조업체까지도 AI를 적용한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내놨다. AI가 모든 산업과 일상에 스며드는 ‘AI 유비퀴터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김주원 기자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다. AI 강국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싱가포르·영국·프랑스·캐나다·인도·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도 AI 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IT 강국인 한국은 AI에서 만큼은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영국 토토스 인텔리전스가 집계한 한국의 글로벌 AI 경쟁력 순위는 세계 6위지만, 민간 투자와 인재 경쟁력 부문의 순위는 각각 18위, 12위에 불과하다. AI 산업에 대한 민간 투자와 기술 혁신을 이끌 인재 양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그러나 AI 산업 발전을 투자와 기술혁신만으로 이룰 수 없다. AI 사용이 확산할수록 AI 개발과 사용에 따른 사회적·안보적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상응한 규제와 책임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AI를 둘러싼 규제와 책임을 함께 고려하지 않고는 AI 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무엇보다 AI와 관련해 발생하는 수많은 법률문제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AI 혁신에 중요하다. 대량의 텍스트와 오디오, 비디오, 심지어 코딩자료를 학습하는 생성형 AI는 타인의 창작물을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생성형 AI가 출시되자마자 개발사를 상대로 수십 건의 저작권 침해 소송이 제기됐다. AI가 만들어낸 창작물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AI 창작물에 저작권이나 특허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AI 민사책임법 도입 서두르는 EU기업의 인사 관리나 업무 배정 같은 의사 결정에 사용되는 AI 혹은 자율주행차 등에 투입된 AI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은 누구를 상대로 어떤 책임을 어떻게 물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는 기존 법체계에서 명쾌하게 해결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은 AI에 특유한 문제를 고려해 종전의 손해 배상 법리나 입증 책임을 수정한 AI 민사책임법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사회와 안보에 대한 AI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 규제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AI 산업은 합리적 규제의 틀 안에서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김주원 기자AI가 초래하는 사회적 위험에는 가짜뉴스와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가짜 영상이나 왜곡된 이미지), 차별, 개인정보 침해, 일자리 소멸 등이 있다. 특히 거짓 정보와 딥페이크는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공정 선거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이나 4월 총선이 코앞에 닥친 한국에서는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유포 가능성에 법 집행기관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궁극적으로 AI가 터미네이터 영화에 나오는 스카이넷처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파괴적인 초지능 AI는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지만, 많은 AI 개발자는 거대언어모델 AI가 발현하는 창의적 능력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AI의 내부 작동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마땅한 기술도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결국 인류 종말의 위험도 배제할 수는 없다.AI 신뢰성 검증이 규제 핵심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30일 공표한 ‘인공지능의 무해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개발 및 사용에 관한 행정명령’은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AI 위험을 수용하면서 10여개 관련 정부 부처와 기관에 각자의 소관 분야에서 AI 위험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을 명하고 있다. 특히 미 상무부 산하 국가표준기술원(NIST) 등에 대해서는 270일 이내에 AI의 위험을 평가하고 AI의 신뢰성을 검증할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가장 위험도가 높은 소위 ‘이중용도 파운데이션 모델’(군사 안보나 경제 안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AI 모델) 개발자에게는 엄격한 레드팀 테스트(모의 적군 시험)를 실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김주원 기자이처럼 국가 안보에 대한 AI의 위협을 중시하는 미국의 AI 행정명령은 개인정보 보호 등 개인의 권리 보호에 방점을 두는 EU의 AI법이나, 사회주의 체제 보호를 우선시하는 중국의 AI 법령과 대비된다. 하지만 어느 국가나 AI 개발자 스스로 또는 국가기관을 통해 AI의 위험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규제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결국 AI 위험을 분류하고 그에 맞춰 AI 시스템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세부 기준(Standards)과 절차를 수립하는 것이 AI 규제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AI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최근 디지털 규범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디지털 협상에서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서버 현지화 요구를 금지하며, 정부가 기업의 소스코드 제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디지털 협상에서 이와 같은 원칙을 더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종래의 원칙이 거대 AI 기업(빅 테크)의 독과점을 견제하고 AI 알고리즘을 받아 AI 시스템의 신뢰성을 검증하겠다는 AI 규제 방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로써 미국의 디지털 정책은 데이터 이동을 제한하고 기업의 소스코드 제공을 요구하는 중국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게 됐다.미·중 경쟁, AI 발전 구도 결정할 수도AI를 둘러싼 미·중 패권경쟁도 AI 경제의 발전 구도를 결정하는 요소다. AI는 군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전형적인 ‘이중용도’ 기술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중국에 AI 반도체를 공급하는 엔비디아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의 강한 반발에도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첨단 컴퓨팅 반도체(소위 AI 반도체) 등의 대중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또한 미국의 AI 행정명령에서는 생성형 AI의 학습 훈련에 필수 인프라인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중국 업체의 접근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앞으로 미국의 대중 AI 기술 통제는 더 강화되고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반도체 등 AI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 기업은 미·중 경쟁이 글로벌 AI 비즈니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둬야 한다.AI는 그 내재한 위험으로 인해 국내·외 각종 규제와 법률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AI에 의한 혁신은 일정한 규제 환경과 법률체계 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AI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나 AI에 투자하고 이를 사용하는 기업은 AI 기술은 물론 관련 규제와 법률을 함께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AI 관련 규제와 법률은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AI 경제를 구축하고 AI 산업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필요조건이다. 건강한 AI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물론 AI 엔지니어, 기업, 법률가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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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진영 간 기술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탈탄소 클린테크’

    글로벌 저탄소 경제 전환의 이면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지난 여름 미국과 유럽 남부에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몰아치고, 산불과 홍수가 캐나다와 아시아 지역을 휩쓸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가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그러나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은 미지근했다. 각국의 기후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9월 유엔이 개최한 ‘기후 목표 정상회의’는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나 버렸다. 오는 11월 두바이에서 개최될 제28차 기후변화총회(COP28)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2050년까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0’(넷제로)으로 만들자는 저탄소 경제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전쟁·팬데믹에 화석연료 증가탄소감축 인류 공동대응에 균열중, 개도국 저탄소 개발 지원미, IRA 등 디커플링으로 맞서탄소가격제 확산에 통상 급변탄소배출 줄여야 경쟁력 유지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 그러는 사이 지구온난화는 가속이 붙고 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유엔(UN)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올해에는 1.5도 이상 상승 가능성을 66%로 보았다.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면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다.내연기관 퇴출 속도 조절론 나와범지구적인 탄소 저감 노력이 현실정치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크다.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막히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화석연료 확보전이 펼쳐졌다. 게다가 세계 경제가 코로나 봉쇄에서 벗어나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를 늘렸다. 전쟁의 여파로 고금리와 고물가가 지속하면서 기후대응의 핵심인 청정에너지 개발도 역풍을 맞았다. 세계 1위 해상풍력발전 개발회사인 덴마크의 오스테드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포기를 시사하는 등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잇달아 중단되고 있다.정근영 디자이너유럽과 미국에서는 2030년경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한다는 계획에 대해 ‘속도 조절론’이 분출하고 있다. 지난 9월 20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 시점을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비싼 전기차 가격, 부족한 충전 인프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내년에 재선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보급계획을 늦출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에 일자리 불안을 느끼는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다.일부 기업과 투자자들의 반 기후적 행태도 저탄소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워런 버핏은 석유회사 셰브론에 무려 33조원을 투자했다. 한때 ESG 투자의 옹호자로 칭송받던 세계 최대 투자회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2022년 5월 “과도한 기후대책은 고객사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며 사실상 변절한 것도 뼈아프다.저탄소 경제에 대한 가장 큰 저항세력은 개발도상국들이다. 국제사회는 2015년 12월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파리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대체로 미온적이다. 지구온난화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에 탈(脫)탄소 비용지원을 요구하며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개발을 당장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탄소 배출국인 인도는 유엔의 2050년 탄소 넷제로 목표보다 훨씬 늦은 2070년에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개도국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패권 다툼이 된 미·중 탄소 감축 전략이처럼 탄소 감축을 위한 인류적 공동 대응에 균열이 생겼지만 ‘클린테크’를 둘러싼 진영 간 지정학적 경쟁은 오히려 심화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2020년 기준)를 차지하는 최대 탄소 배출국이면서 동시에 태양광 및 풍력 발전기 소재·부품, 전기차 배터리와 소재, 관련 희귀광물 등 클린테크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막강한 클린테크 역량을 통해 중국은 전 세계에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은 152개국의 에너지 프로젝트에 160조 달러를 투자했고, 그중 80%는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였다. 그러던 중국이 2021년부터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개도국들의 저탄소 청정에너지 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개도국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미국을 압도한다.정근영 디자이너중국의 클린테크 영향력 확장에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전기차의 자국 내 생산과 중국으로부터의 배터리 부품 및 소재 공급 차단, 전기차의 자국 내 생산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그런 예다. 이처럼 기후대응이 패권 경쟁으로 변질하는 가운데 세계는 비용의 낭비와 중복투자, 효율성 저하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앞으로 저탄소 경제는 기후문제에 대한 인류적 공동대응이라는 이상(理想)보다는 클린테크 공급망에서의 탈중국과 지정학적 경쟁에서의 승리를 우선시하는 현실정치에 의해 이끌려갈 공산이 크다.클린테크(Cleantech)환경친화적인 청정기술과 공정, 관행, 산업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 1990년대 말부터 미국 벤처 투자업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올해 5월 정부가 태양광, 풍력, 수소공급, 무탄소 신전원, 전력저장, 탄소포집 기술(CCUS), 원자력 등 17개 부문을 대상으로 발표한 ‘한국형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은 한국판 클린테크라 할 수 있다.49개 나라에서 탄소가격제 운용저탄소 경제의 또 다른 전개 양상은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의 확산이다. 탄소가격제는 탄소를 배출한 만큼 돈을 내게 하는 제도다. 탄소가격제에는 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가 있다.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들에 배출권을 할당하여 할당범위 내에서만 배출행위를 하도록 하고, 실제 배출량의 과부족분을 거래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세계 최대 배출권 시장을 운용하는 유럽연합(EU)을 비롯해 한국, 스위스, 영국, 뉴질랜드,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 등이 국가 또는 지역 단위의 배출권 거래제를 운용 중이다.한편 탄소세는 배출한 탄소량에 바로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1990년 핀란드가 탄소세를 처음 도입한 이래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프랑스, 독일, 일본, 멕시코, 폴란드, 싱가포르, 남아공, 우루과이 등이 이를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현재 어떤 형태로든 탄소가격제를 운용하는 국가가 49개국, 탄소가격제 도입을 고려하는 국가가 23개국에 달한다.문제는 이들 국가가 탄소 비용을 자국 기업에만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EU가  올해 10월부터 EU로 수입되는 시멘트, 전기, 비료, 철 및 철강제품, 알루미늄과 수소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비용 부과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탄소 비용이 적은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탄소누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EU 수입자는 수입한 상품의 내재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매입하여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다만 원산지국에서 이미 지불된 탄소 가격이 있다면 해당 가격만큼 매입할 인증서 금액에서 차감해준다. 2025년 말까지는 내재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만을 부과하는 전환 기간이지만, 2026년부터 대상 제품의 EU 수출가격은 탄소 가격 차이만큼 높아지게 된다.온실가스 감축, 한국 산업 당면 과제이러한 탄소국경조치는 탄소가격제를 시행하는 다른 선진국들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기업들은 제품가격에 탄소 비용을 포함해야 하고, 해외에 제품을 수출할 때는 자국과 수입국간 탄소 가격 차이만큼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일반화될 것이다.무역의존도와 탄소집약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이와 같은 지정학적 경쟁과 탄소가격제 확산은 거대한 통상 파고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철강,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제품이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 수준이고, 1인당 배출량은 일본 및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보다 높다. 생산 전력 중 석탄 발전 비중이 40%에 달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 내외로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엔 큰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결국 우리가 클린테크를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과 밀려오는 통상 파고를 극복하려면 저탄소 기술혁신이 중요하다. 기업들은 제품 및 에너지의 생산과 운송, 유통, 판매의 전 과정에서 탈탄소를 가능케 하는 기술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찾아야 한다.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원문 링크: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진영 간 기술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탈탄소 클린테크’ | 중앙일보 (joongang.co.kr)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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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의 공급망 무기화로 전 세계 경제 피해

    세계 경제 뒤흔드는 ‘안보 과잉’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미·중 패권경쟁이 끝없는 ‘안보 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패권을 저지하는 것이 국가안보 문제라 하고, 중국은 중국대로 국가안보를 내세워 미국에 맞서고 있다. 최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고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미·중 관계에 뚜렷한 돌파구를 만들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두 초강대국이 벌이는 안보 경쟁은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국가안보가 경제에 우선하면서 지난 수십년간 전 세계 번영을 가져온 다자간 무역체제는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양강 경쟁 ‘안보 게임’으로 변질미, 대중 경쟁 승리가 안보 핵심중, 반간첩법 앞세워 공세 나서GATT, 예외조항 엄격히 제한제재로 상대 굴복시키긴 어려워미 “WTO가 중국 불공정 막지 못해”이코노믹스경제 문제를 국가안보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유럽연합·중국·인도·캐나다 등에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11~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절차에서 미국은 자신의 관세부과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에서 허용하는 ‘안보 조치’에 해당하며, 안보 조치는 아예 WTO 심사대상도 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 WTO 패널은 미국 주장을 기각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관세 부과 철회를 거부했다.바이든 행정부 들어 국가안보는 중국을 견제하는 기본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라고 본다. WTO가 추구해온 자유무역체제는 중국의 정부 주도적 경제운용과 막대한 산업보조금 지급, 기술탈취 등 불공정 행위를 막는 데 실패한 제도라고 규정했다.WTO 다자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뜻이다. 작년 10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금지 등 미국이 취한 대(對)중국 압박조치들이 모두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행해졌다.중, 대외관계법·반(反)간첩법 반격중국도 국가안보를 내세워 거칠게 반격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나 개인에 대해 ‘맞불 제재’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반(反)외국제재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더욱 강력한 대외관계법을 발표했다. 7월 1일부터 시행하는 대외관계법은 외국의 제재 조치가 없더라도 중국의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해치는 국가에 대해서 포괄적인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대외관계법 6조는 “국가기관과 무장역량, 각 정당과 인민단체, 기업과 사업조직, 기타 사회조직 및 공민(국민)은 대외 교류협력에서 국가의 주권, 안전, 존엄성, 명예, 이익을 수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제33조에서는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을 위반하고 중국의 주권, 안보 및 발전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상응하는 반격 및 제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이제 중국에 국가안보는 단순히 소극적 방어 논리가 아니라, 적극적 공격 논리가 된 것이다.김영희 디자이너 중국의 강화된 국가안보는 반(反)간첩법에도 녹아 있다. 대외관계법과 같은 날 시행된 이 법은 안보를 명분으로 내부 통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간첩 행위’에 ‘기밀 정보 및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 취득, 매수, 불법 제공’을 추가했고, 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경미한 행위에 대해서도 행정구류와 같은 처벌을 할 수 있게 했다.문제는 이 법에서 말하는 ‘안보’나 ‘국익’과 관련 있는 정보의 범위가 매우 넓고 불확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내 외국인이나 외국인과 교류하는 중국인들은 통상적인 거래나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정보 수집 또는 제공에 대해서도 ‘간첩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이와 같은 중국의 입법은 앞으로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 혹은 기업에 대한 중국의 제재나 ‘경제적 강압’이 이전보다 혹독해지고 다양해질 것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과거 한국과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에 따른 한한령(限韓令)이나 호주에 대한 석탄 수입 중단에서 보듯, 외국에 대해 무역제재와 같은 공식적인 압박수단과 함께 대중의 상품 불매운동이나 관광 여행 제한 같은 비공식적 압박조치들을 사용해 왔다. 〈그래프 참조〉중, 마이크론 구매 중단 등 경제보복종전까지 중국의 경제적 압박조치는 중국이 필요로 하는 첨단 제조업은 건드리지 않고 주로 소비재 혹은 유통기업을 타깃으로 했다. 그러나 이제 제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월 중국 당국은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을 상대로 전격적으로 사이버 보안 조사를 단행하고,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사실상의 구매중단 조처를 했다. 마이크론은 2007년 시안에 최초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중국 전역에서 3000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인데도 제재를 당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기술봉쇄 조치에 대응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지난 3월과 4월에는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와 민츠그룹이 불시에 보안조사를 받았다. 그뿐 아니라, 일반 외국기업이 중국 데이터 관련법에 따른 데이터 보안기준을 따르지 않거나 심사를 받지 않으면 자칫 간첩죄로 처벌될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데이터의 국외 이동도 국가안보 문제로 본다.GATT는 ‘안보 예외’ 제한적으로 인정최근 상황은 미·중 경쟁이 ‘안보 과잉’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무역자유화를 통해 세계 평화를 유지하자는 의도에서 탄생한 GATT가 염려하고 경계했던 현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GATT는 특정 국가나 외국기업 또는 외국상품에 대한 차별 금지, 일방적인 수출입 제한 금지 등을 회원국의 기본의무로 규정했다.다만 예외적으로 일정한 ‘안보 이익’의 보호를 위해서는 무역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제21조에서 각 회원국은 ‘핵분열 물질이나, 무기 운반 또는 군사기지에 대한 물자 보급과 관련하여, 혹은 전쟁 또는 국제관계에서의 긴급한 시기에, 본질적인 안보이익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것이 이른바 ‘안보 예외’다.그러나 안보 예외가 남용되면 자유무역체제가 유지될 수 없기에 안보 조치의 남용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가 GATT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다. 제21조 안보 예외 조항의 문구를 제안한 미국의 협상대표 중 한 명인 레디(Leddy)는 “이 조항을 너무 엄격하게 만들면 오로지 안보 목적으로 취하는 무역제한 조치도 금지될 수 있지만, 너무 넓게 만들면 사실상 상업적 목적으로 취하는 조치를 안보 조치로 포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안보 조치는 ‘본질적인 안보 이익’의 보호를 위해서만 취할 수 있고, 상업적 목적으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오늘날은 민간 기술이 군사 기술로 전용될 수 있고, 경제 문제라 하더라도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것이 있을 수 있어, 국가안보의 범위가 예전보다 넓어질 수는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취하는 다양한 안보 조치 중에는 WTO 협정의 규율대상을 벗어난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상대를 공격하고 압박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들은 총체적으로 다자무역체제를 부정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여파중국이 지난 3일 반도체 및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미·중 대립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건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에 맞서 중국도 본격적으로 공급망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신호다. 대외관계법과 반간첩법 시행과 함께 중국이 미국과의 ‘총성 없는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미국은 갈륨과 게르마늄을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강국 한국도 비슷한 처지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의 목줄을 쥐고 있는 공급망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로 인한 피해는 미·중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칠 수밖에 없다.미·중의 경제적·군사적 덩치에 비추어 본다면 제재를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기는 어렵다. 도리어 제재가 제재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 편중한 공급망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각국의 공급망 재편 노력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할 수 있다.하지만 ‘안보’의 이름으로 상대국 또는 그 기업을 직접 제재하거나 목줄을 죄는 행위는 그것이 GATT 제21조가 말하는 ‘본질적 안보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한, 자제해야 할 것이다. GATT 제21조 안보 조치는 자유무역체제에 기반을 둔 세계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을 미국과 중국은 잊지 말아야 한다.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 연구원 상임대표ㆍ변호사원문링크: [김두식의 이코노믹스] 미·중의 공급망 무기화로 전 세계 경제 피해 | 중앙일보 (joongang.co.kr)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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