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일본으로 간 까닭=일반적인 관점에서 첨단 업종의 해외 생산 입지 결정요인으로 ▷현지 기술 활용 여부 ▷고객 수요 ▷근무 문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우선 일본과의 기술적 결합 효과가 TSMC의 일본 공장 설립을 이끈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재팬 타임스(Japan Times)는 TSMC가 일본이 가진 첨단 소재와 이미지 센서-패키징 기술을 이용하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소니는 자체 생산하는 이미지 센서에 맞춰 28나노 공정을 사용해 이미지 신호프로세서(ISP)를 생산하기로 한 바 있다. 여기에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전자기기 제조업에서 나오는 반도체 수요가 많다. 합작사인 소니는 TSMC의 고객사이고 토요타는 차량용 반도체 수요처다. 근무 문화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미국에 비해 근로시간이 길고, 고용주에 대한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방진복을 오래 입어야 하는 클린룸 근무와 24시간 교대근무도 잘 수용하는 편이다. 지리적 인접성도 작용했다. 대만에서 규슈까지 비행기로 2시간 남짓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2021년 먼저 착공한 TSMC 애리조나 공장은 인력 부족 등 문제로 지연되면서 가동 시점이 내년으로 미뤄졌다. ▶구마모토에 둥지 튼 까닭=구마모토가 위치한 규슈 지역은 일본이 세계반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던 1980년대에 핵심 기지였으나 이후 한국, 대만에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 구마모토가 일본의 ‘신(新) 반도체 밸리’를 표방하며 재건에 나서고 있다. 구마모토현 기쿠요 타운(菊陽町)은 인구 4만 4,000명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소니 반도체의 자회사인 소니 세미컨덕터 공장과 도쿄일렉트론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 포진한 공장들은 센서와 웨이퍼 장비를 만들어 소니와 도쿄일렉트론에 납품한다. TSMC로서는 최적의 입지 여건을 갖춘 이상적인 곳이다. 일본 중앙정부와 의회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까지 힘을 모아 발 빠르게 수십 년 묵은 규제를 풀고, 인허가 절차를 줄여나간 것도 TSMC의 신속한 투자를 유도했다. ▶협력 파트너 관계=TSMC 구마모토 공장은 소니 세미컨덕터 솔루션즈(Sony Semiconductior Solutions), 덴소(Denso), 토요타자동차(Toyota Motor)와의 4자 합자회사다.* 2021년 11월 TSMC와 소니 세미컨덕터의 두 회사 간 합자 형태로 출발했으나 이후 덴소에 이어 토요타가 참여했다. 이는 자동차 레이아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TSMC의 해외 파트너에 현지국 자동차 기업이 직접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SMC와 소니, 덴소, 토요타의 지분 비율은 각각 86.5%, 6.0%, 5.5%, 2.0%. 일본 정계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 꼽히는 아마리 아키라(甘利 明) 일본 반도체 전략추진 의원 연합회 회장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는 3조 엔(27조 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TSMC는 앞으로 추진될 현지 제2공장을 포함해 최대 9,000억 엔(8조 원)을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리 회장은 “대만과 일본의 반도체 협력으로 다양화되는 고객 맞춤형 수요에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량 주문 위주인 TSMC가 일본 기업과의 협력으로 짧은 주기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돼 소량 맞춤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구마모토 팹의 생산 계획=올해 말까지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은 4,760억 엔(4조 2,000억 원)으로 전체 투자금의 절반에 달한다. 제2공장까지 포함하면 총투자액 200억 달러로 대만의 단일 일본 투자로는 최대 규모다. 주요 공정은 12-16나노미터와 22-28나노미터의 연산을 하는 범용형 로직 반도체로 월간 5만 5,000장(12인치 환산)을 생산한다. 현재 일본 반도체 업계에서 양산할 수 있는 최신 공정이 40나노임을 고려하면 일본으로서는 도약할 수 있게 된다. 구마모토 공장 개장을 앞둔 지난 2월 6일 TSMC는 구마모토에 두 번째 칩 공장을 짓고 2027년 가동에 들어간다고 공식 발표했다. 생산 규모 확대에 따라 비용 구조와 공급망 효율성 측면에서 최적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두 팹을 통해 구마모토 팹의 월간 총생산 능력은 12인치 웨이퍼 기준 100,000장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 미치는 영향=일본도 TSMC 공장 설립으로 큰 혜택을 받는다. “규슈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이 현재 50조 엔(443조 원)에서 2035년 75조 엔(664조 원)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본 연구기관에서 나온다. 구마모토 지역은 최저 임금이 일본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왔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약 40%가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는데 TSMC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뀌게 됐다. 일본에서는 일자리 3,400개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TSMC는 지난해 초 엔지니어 모집 광고를 내면서 현지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보다 30% 이상 높은 급여를 제시했다. 이에 일본 로컬 제조업체들 사이에선 TSMC가 촉발한 임금 급등으로 직원 이직과 인력난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구마모토 노동국은 올해 말 본격 양산 단계가 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인력 부족 문제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장이 들어선 주변 지역에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부동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인프라·부동산·국제학교 등 주거·생활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마모토 지역의 집세가 지난 2년 동안 30% 뛰었다. 상업용지 가격은 1년 새 26% 올랐다. 주요 간선도로에 교통 체증이 심화하면서 정부 당국은 출근 시간 조정을 권장하고 있다. 칩 공장에 많은 양의 공업용수와 전력이 필요한 점도 일각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